2018.09.10 (월)

캘리포니아주에서 중재합의서(arbitration agreement)의 미래



캘리포니아주 상원은 지난 8월 22일 고용주들에게 불리한 '강제중재 금지법안(Mandatory-arbitration ban, AB 3080)'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고용주들은 고용계약 시 근로자들로 하여금 중재 합의서(arbitration agreement)에 서명하도록 함으로써, 노동법 관련 분쟁 발생 시 법정 소송에 따른 비용을 줄이고 집단소송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AB 3080'이 시행될 경우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중재 합의서 서명을 강제하지 못하게 된다. 현재, AB 3080은 제리 브라운 주지사 사무실로 이관됐으며, 주지사는 오는 9월 30일까지 법안에 서명을 하든 아니면 거부를 해야 한다. 


중재라는 것은 법정 소송을 거치지 않고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결과는 법원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고용주의 잘못을 법정에서 가리지 않고 이해 당사자 간 의견을 듣고 대부분 은퇴한 판사인 중재관이 합의하도록 한다. 배심원이 배제되기 때문에 중재는 아무래도 고용주에 유리할 수 있다. 중재에 참여하는 사람도 제한적이라 고용주 입장에서는 일을 조용히 처리함으로써 명예훼손도 막을 수 있다. 


AB 3080은 '미투 운동'이 도화선이 됐는데, 직장 상사의 성희롱을 회사에 알리고 소송을 제기하려고 해도 고용계약 시 서명한 강제중재 합의서 탓에 사안이 축소되고 오히려 피해를 보는 사례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 우버 엔지니어 수잔 파울러가 지난해 블로그 포스트에 전 CEO 트래비스 캘러 닉의 성희롱 사실을 폭로하면서 기업의 강제중재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파울러는 자신이 캘러 닉의 성희롱 사실을 회사에 알렸을 때, 자신은 강제중재 협의서에 서명을 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우버 측은 파울러가 2016년 강제중재 조항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강제중재에 대한 폐해가 직장 내 불합리를 가리는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브라운 주지사가 법안에 서명을 한다면, 가주 고용주들은 고용 시 종업원에게 강제중재 합의서에 서명을 강요할 수 없게 된다. 또, 집단소송을 염려해 직원들 간 직장 내 성희롱이나 미지급 임금, 각종 차별 등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도 강제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브라운 주지사가 과연 AB 3080에 서명을 할지는 미지수다. 그는 지난 2015년 가주 상공회의소 측의 '일자리를 훼손하는 법'이라는 의견을 좇아 고용 시 강제중재 합의서 서명을 금지하는 법안을 반대한 바 있다. 


설사, 브라운 주지사가 법안에 서명을 한다고 해도 법 시행에는 큰 걸림돌이 있다. 연방법과의 충돌 가능성 때문이다. 연방대법원은 지난 5월 '고용 중재 계약서에 사인을 했을 경우 고용주가 고용인의 집단소송을 막을 수 있다'라고 판결한 바 있다.




연방 대법원은 지난 5월 21일 찬성 5, 반대 4로 고용 중재 계약서에 사인을 했을 경우 고용주가 고용인들의 집단소송을 봉쇄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번 결정을 두고 CNN은 '고용주와 트럼프 행정부의 승리'라고 보도할 만큼 비즈니스는 물론 노동계에 미치는 영향을 클 것이란 전망이다. 


그동안 고용주들은 중재 계약서에 집단소송 유예 항목을 넣고 사인을 받음으로써 고용인과의 법적 분쟁 시 개인별 중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도모해 왔다. 하지만, 고용인들과 노동조합 등 노동계에서는 고용주와의 분쟁 시 개별 중재를 할 경우 비용도 많이 드는 데다 집단 파워를 발휘할 수 없어 불리하다며 반대해 왔다. 


연방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헬스케어 소프트웨어 회사인 '에픽 시스템 대 고용인 루이스'간 분쟁에 근거해 내려진 것이다. 에픽 시스템의 근로자, 제이콥 루이스가 오버타임 지급을 거부하는 회사를 상대로 클레임을 하면서 집단을 대표해 연방 대법원까지 케이스를 끌고 갔던 것. 에픽 시스템 측은 루이스가 중재조항에 사인을 했기 때문에 집단소송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루이스 측 변호사는 전국 노동관계법(NLRA) 상 집단소송 유예는 잘못된 것이라고 팽팽히 맞섰다. 


고용주와 고용인, 양측이 이토록 팽팽히 맞서며 대법원까지 가게 된 데에는 두 개의 모순된 연방 노동법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925년 제정된 연방 중재법(FAA)은 고용주들에게 중재를 통한 해결을 허용하고 있으며, 10년 후 제정된 또 다른 법인, NLRA는 근로자 보호를 위한 집단행동 참여를 인정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도 고용주들을 지원해 왔으며, 이번 연방 대법원 판결은 정치적 측면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노동정책을 뒤바꾸는 결정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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