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30 (일)

대박난 발명품들 100가지 이야기

대박난 발명품들 100가지 이야기 (101) - 한국 딸기가 맛있고, 한국 나무가 강한 이유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유통되는 딸기는 일본 딸기 품종인 아키히메 (장희)랑 레드펄 (육보)이 대세였다. 이걸 빌미로 일본 정부는 전문 변호인단을 꾸려 매년 한국으로부터 딸기 종자 로열티를 60억씩 받아갔다. 이를 보다 못해 논산 농업기술원에서는 토종 딸기 종자 개발을 위해 오랜 기간 동안 연구를 진행했는데 무려 10여 년 만에 개발된 국산 딸기 종자가 바로 '설향'이다. 


농업기술원에서는 설향을 논산 농민들에게 보급했지만 키워보니 과육이 너무 물러 터져서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과육이 무르면 유통과정에서 상처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침 지나가던 논산 딸기 연구회 회장이 훈수를 뒀다. 일본산 품종 키우듯이 물을 많이 주지 말고, 물을 조금씩 나눠서 주면 괜찮다는 것이다. 


논산 딸기 연구회 회장의 기적 같은 말 한마디로 설향 품종은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물을 조금만 주니 당도도 높아지는 엄청난 비밀까지 알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일본에서는 난리가 났는데 한국 같은 나라가 어쩧게 종자를 개발하겠냐며 로열티 내기 싫어서 사기 치고 있다고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본은 한국에게 설향에 대한 연구자료를 내놓으라고 하였고, 한국에서는 자신 있게 설향 종자를 일본으로 보내고 일본에서 유전자 검사까지 해본 결과,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품종 임이 확실하여서 한국의 딸기 농부들이 많은 돈을 절약하고, 한국의 소비자들은 맛있는 한국 딸기들을 먹게 되었다.


수백만명의 인명피해를 낸 625 전쟁 이후의 1950년도에 한국의 산들은 대부분 민둥산이었다. 


임학계와 과학계의 명예전당에 동시에 오른 유일한 인물이고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임목육종학자인 현신규 박사다. 현신규 박사는 우리나라의 산림에 더욱 적합한 수종을 만들기 위해 유럽에서 도입되어 이미 토착화되어 있던 은백양과 우리나라 토종인 수원 사시나무를 교잡해 현사시를 만들었다. 평지가 아닌 산지에서 이태리포플러보다 더 우수한 이 나무는 1968년부터 ‘은수 원사 시’라는 이름으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 나무는 현 박사의 성을 따서 ‘현사시’로 불리게 됐다. 


현 박사가 10여 년이 걸려 만든 현사시는 무엇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또 꺾꽂이가 잘 돼 대규모 번식이 쉬우며, 곧게 자라는 성질이 있어 목재로써의 가치도 높다. 더구나 낙엽병에 대한 저항성도 갖추고 있어서 헐벗은 산을 빠른 속도로 푸르게 만들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현 박사 등의 노력으로 한국의 민둥산들은 사라지고 푸르게 변해갔다. 또한 포플러 나무의 낙엽병으로 골치를 앓고 있던 호주는 1980년 숲을 현사시로 교체할 계획을 세우고 현 박사로부터 이 나무를 수입해가기도 했다. 


한편 오늘날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유전자 재조합 식품) 산업을 대표하며 전 세계 농업계를 좌우하는 초국적기업 몬산토는 어떤 회사일까? 


'몬산토(Monsanto)'는 코카콜라에 인공감미료 사카린을 납품하는 화학회사로 출발해 베트남 전쟁에서 군용 고엽제인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를 미군에 공급하며, 이후 농업회사로 변신하였다. 


오늘날 종자 개발을 주도하는 대표적 기업인 몬산토는 애초 화학기업으로 출발했다. 최초의 인공감미료인 식품첨가물 사카린을 생산하여 코카콜라에 납품하는 것으로 출발한 몬산토는 1902년부터는 카페인과 바닐린을 생산하면서 규모를 늘렸고,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1917년부터는 아스피린 제조에도 뛰어들었다.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유럽에도 진출하여 다국적 종합화학 제조기업으로 성장한다.  


그 뒤 몬산토는 베트남 전쟁 때 화학무기인 에이전트 오렌지를 미군에 공급했던 기술에 기반을 둔 화학산업으로 농업에 뛰어들었다. 1971년 에이전트 오렌지 사용이 법으로 금지되자, 몬산토는 라운드업 제초제가 적정량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제초제보다 더 환경 친화적이라고 홍보하면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1997년 2월엔 주력 업종인 화학 부문을 매각하고 생명과학 중심의 '녹색혁명'에 사운을 걸겠다고 발표한 후, 본격적으로 생명과학에 근거한 비생물 의약 부문 사업을 추진해 왔다. 화학공업에 대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제초제와 종자 개발을 주도하였으며, 오늘날 먹을거리 세계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간 몬산토가 주력해 온 생산품을 보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공품이 종자에서부터 식탁에 이르기까지 전반을 아우른다.  


몬산토의 상품들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전 세계적으로 대대적으로 사용되었다. 산업용, 농업용 제품들과 위생용품을 표방한 각종 제품들이었다. 특히 최초의 화학 살충제로 알려진 DDT(Dichloro Diphenyl Trichloroethane] )는 '식물 위생제품'으로 불리며, 마치 식물을 보호하고 환경에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다. 몬산토의 새로운 화학적 발견들은 염소화합물의 배합 비율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소량의 인공 호르몬은 식물 생장을 촉진하지만 일정량을 초과하면 식물을 죽일 수 있다는 원리는 이후 살균제·구충제·제초제를 개발하는 기반이 되었는데,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1971년 이래 라운드업은 당시 농민들이 가장 많이 쓰는 제초제가 되었으며, 회사에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 20년 후 몬산토는 발전된 생명공학 기술을 가지고 라운드업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라운드업 제초제에 내성을 지닌 유전자를 골라냈다. 그리고 이렇게 찾아낸 유전자를 콩에 집어넣어 라운드업 제초제를 극복할 수 있는 '라운드업 레디' 종자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동종 기업인 신젠타도 리버티 제초제에 내성을 지닌 '리버티 링크(Liverty Link)'라는 같은 원리의 GMO 패키지를 내놓았다.


이런 제품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실험은 있었지만, 그 효과가 확산된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1996년 미국에서 라운드업 레디콩을 팔기 시작했을 때는 단지 2%의 콩만이 라운드업 레디 특허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8년이 되자, 미국 콩의 90%가 이 특허 유전자를 포함하게 됐다. 1985년 실용 특허에 관한 판례가 나왔을 때만 해도 농민들은 특정인이 종자를 사유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 후,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몬산토는 사설탐정을 고용하고 신고를 위한 직통전화를 운영하면서 농민들이 몬산토의 씨앗을 보관하고 있는지를 감시했다.

미국의 데이비드 루연이라는 농민은 일리노이 주의 마지막 씨앗을 보존한 농민이었다. 몬산토 씨앗을 쓰지 않기 위해 '나 하나만이라도 재래종을 쓰겠다'고 했으나, 이내 이웃들이 사용하는 GMO에 오염됐다. 이웃들이 심은 작물의 GMO가 날아온 꽃가루나 우연히 떨어진 씨앗에 의해 옮겨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GMO에 오염된 농가 스스로가 몬산토 씨앗을 도둑질하지 않았다고 입증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몬산토는 현재 옥수수·목화·콩·카놀라, 채소의 종자를 교배·배양·생산·판매하는 업종에 주력하면서 전 세계 GMO 식품의 90%에 대한 특허권을 소유하고 있다. 전 세계 46개 국가에 해외지사를 두고 있으며, 몬산토코리아는 한국의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를 합병해 만들었다. 현재 몬산토코리아는 '동부팜한농'에서 인수했지만, 한국의 청양고추와 같은 주요 기술들에 대한 특허는 여전히 몬산토가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몬산토와 같은 다국적 기업들은 그들의 주장대로 농업을 개선하고 세계를 식량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현재 종자 및 먹을거리 문제와 관련해서 몬산토에 대한 상반된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먹을거리와 환경문제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종자 독점을 추구하며 개발도상국 농업체계를 파괴하고 있는 기업으로 몬산토를 비판하는 한편, 경영학계와 산업계에서는 외부환경의 변화에 맞게 핵심 사업을 이동시키면서 발전해 온 '변신의 귀재'로 평가하고 있다. 전 지구적인 식량위기, 경제위기가 급속히 확산되던 2008~2009년에 몬산토는 역대 최대 수익을 올렸으며, 미국 경제잡지 <비즈니스위크>의 '2008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10대 기업'에 선정된 바 있다. 그런데 몬산토 같은 다국적 기업의 성장 배경을 보면 환경오염, GMO 안전성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해 환경보전, 식량위기 해결 같은 슬로건으로 혁신의 이미지를 내세워 대응해 왔다. 

몬산토, 신젠타와 같은 다국적 기업의 성장기를 살펴보면 우리의 먹을거리가 화학산업과 결합해 '식품'이 되는 과정, 최근 생명공학과 결합하여 바이오산업으로 확대되는 과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다국적 기업들의 주장과 달리 종자는 농민의 손에서 점점 멀어지고, 이윤은 기업에게만 집중되고 있다. 과연 이런 기업에게 우리 종자와 먹을거리의 미래를 맡겨도 좋을까? 1990년대 초반 8억 5000만 명이던 기아 인구는 현재 약 10억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늘날 약 10억의 인구가 기아와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중 80%가 농촌에 살고 있고, 그중 50%가 소농이라는 보고 자료도 있다. 즉, 세계를 식량위기에서 구하려면 소농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주된 과제가 된다. 소농은 개발도상국의 빈곤층이 식량위기 등으로 겪는 취약성을 낮추고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데 중요하지만, 이것이 기업의 이윤 창출과 충돌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농촌진흥청도 최근 GM 벼 시험재배를 마쳤으며, 이에 대한 식물 특허를 출원한 상태이다. 
한편으로, 몬산토의 문제는 '제2의 몬산토'를 꿈꾸는 한국 기업들과 관련된 사안이기도 하다. 하루에 한 끼도 자급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농촌진흥청 및 국내 유수 기업들은 수출용 종자 개발에만 주력하고 있다. 

몬산토와 같은 개발전략을 가지고 몬산토를 따라잡는 방식이다. 종자 개발을 위한 보조금과 연구들은 자급형 종자의 안정적 생산이 아니라, 생물자원을 선점하기 위한 이윤창출에 목적을 두고 있다. 

몬산토의 영향은 여전히 인류에게 현재 진행형이다. 소수 기업의 행위에서 비롯된 사건들이 생태계 전반, 인류의 먹이사슬을 위협하고 있다. 몬산토는 '독약의 군주'라는 반발에 직면할 때마다 친환경성을 내세우며 변신을 꾀했지만, 공업원료를 기반으로 하는 개발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또한 새로운 제품 개발과 시도는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다. 실험과 시도는 일시적이었지만 그 영향이 미치는 끝은 예측할 수 없다. 먹이사슬을 따라 독성이 농축되었으며, 오히려 다음 세대에서 더욱 큰 위험을 낳기도 했다. 

현재 70억의 세계 인구가 매년 7 천만명씩 늘고 있다. 농업혁명 등 기술 개발을 통해서만 늘어나는 인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익만을 추구하는 한 기업이 아니라 사명감을 가진 과학자들의 양성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상기 변호사 

·      미국 특허 상표청 등록 특허 변호사

·      로욜라 대학 법대, 법학박사

·       랜다우어 수석 연구원

·       파나소닉 연구원

·       일리노이 주립대학 – 전산학과 석사

·       일리노이 주립대학 - 전산학과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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