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업 활성화는 대한민국 경제의 킹핀(King-pin)”

▲ 거꾸로 TV 앞에선 이광형 원장.
거꾸로 보이는 상을 통해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고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주말동안의 장맛비 이후 다시 무더위가 시작된 7월의 어느 월요일 오후, 이광형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원장을 찾았습니다. 연구실에 들어서자 좌우로 학생들이 선물한 롤링페이퍼 액자가 보이는군요. ‘필사즉생 필생즉사’ 액자, ‘출사표’가 적힌 부채도 의미심장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광형 원장은 날이 덥다며 냉장고에서 꺼내온 비타민 음료와 양파즙을 모두 건네주면서 “TV를 거꾸로 본적 있어요?”라고 물어보곤 TV를 켰습니다. 그 유명한 ‘거꾸로 TV'죠. 내용을 집중해서 시청하지는 않지만 항상 켜 둔다고 합니다. 거꾸로 보이는 상을 통해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고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늘 새로운 아이디어에 목말라 하는 이광형 원장에게 창조경제는 어떤 의미일까요?
“창조경제라는 것은 심플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 즉 기술로 경제를 부흥시키는 것이죠.”
이광형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영국, 미국, 호주와 같은 선진국들은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창조산업, 창조국가 등을 주창하며 신산업을 육성해 왔다고 합니다. 중국은 2011년부터 제조에서 창의성 중심으로 선진화를 이룬다는 양화융합(两化融合)을 추진하고 있지요. 이광형 원장은 “지금까지 우리는 대기업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해오다 보니 이제 한계가 왔어요.”라며 “10년 전에 대안을 준비하고 키워왔다면 현재처럼 석유화학, 조선, 제철 등이 부진할 때 기대하는 산업이 있었을 것입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해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광형 원장이 언급한 대안은 바로 창업을 통한 새로운 산업의 육성입니다.
창업은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미국은 창업이 활성화된 나라입니다. 애플, MS, 구글, 페이스북 등 성공한 벤처기업들이 국가 경제의 중심을 이루고 있지요. 최근에는 포켓몬고 열풍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그 뿐인가요, 인공지능과 로봇 시대도 주도하고 있습니다. 창업의 힘입니다.
“우리가 창조경제를 시작한 이후 나름의 성과도 있다고 봅니다. 요즘처럼 대기업이 부진할 때 창업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이광형 원장은 박근혜 정부에 들어 창조경제타운을 중심으로 그간 주춤했던 벤처 창업을 유도하고 있어 다행이라고 합니다. 이광형 원장의 이러한 철학은 모 일간지 기고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그는 기고문에서 ‘거제도에 창조경제타운을 세우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는데요, 창조경제타운을 대기업과 한다고 해서 일부 비판도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것입니다. 노키아 사례처럼 같은 돈이면 실업대책으로 쓸 예산을 창업에 써야 생산적이고 희망적이지 않겠냐고 덧붙이기도 했지요.

▲ 2015년 창조경제박람회.
IT 태동기의 열기 이후, 벤처기업 창업은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주춤했습니다.
그러나 이광형 원장은 최근 창업 열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어 다행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IMF 이후 창업이 장려되면서 한때 벤처 열기가 뜨거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벤처기업들의 비리나 횡령, 주가조작 등이 문제가 되면서 각종 규제가 강화됐지요. 이광형 원장은 현재 벤처기업과 창업을 위축시킨 원인을 여기에서 찾습니다.
“네이버, 넥슨, 다음 등 국내 성공한 벤처기업들도 이때 설립됐지만 지금은 이와 같은 기업이 거의 없습니다. 규제 강화보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했어요. 지난 10여 년간 100억 원짜리 비리를 잡자고 10조 원의 기회를 날려버린 셈입니다.”
창업 과정에서 개인이 져야 할 리스크가 크다는 것도 부담입니다. 공식적으로는 폐지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도 암암리에 존재하는 연대보증과 무력화된 스톡옵션도 문제죠.
“실패 시 리스크는 사회적으로 분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부담을 덜어줘야 합니다. 연대보증처럼 창업에 한 번 실패하면 다시는 회생하기 어렵게 하는 제도도 아예 법률로 금지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이광형 원장은 규제 완화에 대해서도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창업과 관련하여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은데, 규제라는 것의 속성상 다양한 이익이 충돌할 때 이를 중재하는 것이 바로 규제이므로 일종의 필요악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따라서 불편하더라도 규제를 완전히 없앨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규제를 어느 정도로 가해야 할까요? 이광형 원장은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따를 것을 주문합니다.
“제 생각에 규제 완화의 범위는 규제 법안을 만드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는 계층도 스스로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소위 고위층이나 지도층이지요. 이들은 사회에서 발언권이 강한 집단이므로 규제처럼 권리행사를 제한하는 데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창업 관련 법안은 모든 사람이 그 대상인 만큼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스스로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고위층이 수용할 수 없는 규제는 남들에게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격변의 시대, 4차 산업혁명 물결에 올라타야
10여 년 전, 이광형 원장은 주위로부터 ‘미친 소리 하는 사람’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당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바이오와 ICT 융합을 추구하는 학과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액자와 출사표 부채가 바로 그때 사무실에 비치한 것입니다. 실제로 죽으러 간다는 심정으로 바이오및뇌공학과 설립을 추진했다고 하네요.

▲ 이광형 원장의 액자들.
액자 속의 필사즉생, 필생즉사라는 출사표가 보입니다.
바이오및뇌공학과를 설립 추진할 당시의 마음가짐을 새긴 것입니다.
“마침 앨빈 토플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미래는 바이오와 ICT가 융합되는 시대’라는 주장이 담긴 기사가 보도됐어요. 당연히 저는 기사의 복사본을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설득했지요. 그 결과는 보시는 대로입니다. 죽는 길로 갔더니 내가 승리한 셈이죠.”
이광형 원장은 직접 스크랩북에서 찾은 신문기사를 보여주면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의 노력에 힘입어 현재는 그 누구도 바이오와 ICT 융합 시대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광형 원장의 노력은 앞으로 우리가 지향할 바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1, 2차 산업혁명에서 뒤쳐져 나라를 잃고, 분단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정보화를 앞세운 3차 산업혁명에는 슬기롭게 대처해 IT 강국으로 거듭났지요. 그렇다면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어떻게 맞아야 할까요?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올라타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10년 후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헬스케어 산업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개인정보보호법 개선 등 빅데이터를 산업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트는 것과 같은 노력을 해야 하지요.”
우리는 이미 전기차, 드론 등 앞선 기술의 현장 적용을 막는 규제로 인해 신산업 창출의 기회를 중국에 내준 바 있습니다. 중국의 화웨이(통신장비), 텐센트(SNS), BYD(전기자동차), DJI(드론) 등이 세계 1위로 치고 올라올 때 우리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감이 있습니다. 이광형 원장은 창조경제타운의 역할이 바로 신산업 창출 경쟁에서 우리가 뒤처지지 않게 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조경제타운과 같은 재정적 지원이 가능한 인프라와 규제 완화도 병행해 새로운 산업이 대박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창업활성화는 볼링에서의 킹핀과 같이 잘 맞추면 스트라이크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 이광형 원장은 앨빈토플러 방문 당시 스크랩한 기사를 꺼내 보여주며,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올라타야 할 시기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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