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들이 만드는 콘텐츠 시장, 크리스피 손대균 대표
처음에는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만화책이었다. 그러나 입소문에 출판사의 지원이 더해지면서 시리즈를 거듭하며 제법 큰 팬덤을 이루더니 곧 TV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 재탄생하고 나중에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로 박스오피스를 장악한다. 팬덤은 전세계로 확산되어 수많은 팬들이 만들어내는 2차 창작물이 또 다른 세계를 이루어 이야기를 확장한다.
언젠가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한 미국 만화의 이야기다. 마블코믹스나 DC코믹스의 수많은 영웅들은 만화책과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로 재탄생하며 자신의 세계를 키워 왔다. 양적인 성장은 매출과 수익으로 연결되었을 뿐 아니라 이야기가 스스로 생명력을 얻어 성장하게 했다. 바로 ‘콘텐츠의 힘’이다.
좋은 콘텐츠는 억지로 띄우지 않아도 적절한 계기만 있으면 생명력을 얻어 성장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진정한 의미라 할 수도 있겠다. 콘텐츠의 생명과 확장력을 믿고 진정한 원 소스 멀티 유즈를 추구하려는 창작가, 크리스피의 손대균 대표를 만나본다.
크리스피는 콘텐츠 제작 및 기획을 전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제품이 있는 일반적인 기업과는 약간 다른데, 현재 크리스피에서 진행중인 사업의 특징에 대해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크리스피는 이제 4년째 접어든 콘텐츠 전문 벤처기업입니다. 하나의 영상 콘텐츠를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앱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제작하여 공급하는 원소스멀티유즈(OSMU) 전략을 추구하고 있지요. 2012년에는 세계 20여국에 3D 영상 관련 콘텐츠를 배급하는 3D콘텐트허브로부터 150만달러 투자 유치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큰 히트작을 내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시도를 통해 조금씩 성과를 쌓아가는 중입니다.
이론에서 창작으로 전환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겁이 없었죠. 군 복무를 마친 후에 북미를 여행하다가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 들른 적이 있어요. 영화 ‘아이다호’에 나올 것만 같은, 작고 조용한 마을이었죠. 사람들도 좋아서 며칠을 머물렀는데 여기서 쉬는 동안 지금의 기억을 영원히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영화였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영화인들의 사정이 썩 좋지는 않았어요. 저도 조연출을 거치면서 얻은 수입이라고는 일 년에 80이 고작일 때도 많았을 정도지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어린이 애니메이션 제작 현장으로 옮겼어요. 이 때 관여한 작품들이 <코코몽>이나 <한반도의 공룡>이었죠.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월급을 받는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여전히 생계가 걱정이기는 하지만 영화를 할 결심을 했을 때부터 콘텐츠와 창작은 제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영상 작업을 하다 창업에 이르기까지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창업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안정적인 생계죠.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정말입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이, 콘텐츠에 대한 가치평가가 박한 편이라는 것이었어요. 창작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지만 생활인인 이상 그로부터 생계를 유지할만한 수입은 얻어야 하지 않겠어요? 콘텐츠의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하면서 더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겠지요. 창업을 결심한 이유도 저만의 콘텐츠로 정당하게 평가받고 안정적인 창작 기반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어요.
어떤 사업 플랫폼을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지난 해 <롤러코스터보이, 노리>라는 작품을 만들었어요. 애니메이션 자체의 판매 뿐 아니라 동화, RC 자동차, 장난감과 같은 다양한 상품 개발도 추진하고 있지요. 이처럼 콘텐츠 상품을 중심으로 다양한 제품군을 개발하여 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크리스피의 주요 전략입니다. 교육 콘텐츠 플랫폼도 교과서를 옮겨놓은 것 같은 형태가 아니라 캐릭터와 스토리를 이용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롤러코스터보이, 노리를 이용한 영어단어학습기를 중국에 라이선스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창업과 관련하여 창조경제타운에서 어떤 도움을 받으셨는지요? 그리고 현재 어떤 지원이 추가로 필요하신지도 의견 부탁드립니다.
콘텐츠 아이템을 기획하고 디자인한 후 시장에 내놓으려면 어려움이 많아요. 특히나 앱은 많이들 만드는 데 비해 매출을 발생시키기가 매우 어렵죠. 무엇보다 어려운 것이 금전적 문제입니다. 가진 돈이 넉넉지 않으니 지원이나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받기 위한 준비할 것들도 많고 자격조건도 까다롭거든요. 창조경제타운을 멘토를 통해서 투자 유치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엔젤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조금씩 투자가 결정되더니 9월까지 4.5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하게 되었네요.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창업 후 3년 이내에 쓰러지는 경우가 많은데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긴 것이지요. 덕분에 지금은 중국 시장 진출을 진지하게 노려볼 수 있을 만큼 안정되었어요. 게다가 타운에서 연계하는 부처 사업인 문체부 콘텐츠 코리아 랩 사업에 선정되어 정부 자금을 통해 콘텐츠 개발을 할 수 있게 되었죠.
창업한 입장에서, 창작자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창업은 분명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창작자들 스스로가 창업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콘텐츠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 누구에게 어떤 콘텐츠를 제공하면 좋을지 가장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창작자들이거든요. 그리해야 콘텐츠의 가치도 점차 높이고, 우수한 인력이 모여들게 하고, 전반적인 콘텐츠의 질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한국의 창작자들에게 실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남은 것은 과감하게 도전하고 콘텐츠 시장을 이끄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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